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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리유래

옹이에묻어난향기 2016. 2. 21. 16:06

 

덕촌리.hwp

덕촌리(德村里)로 속한 마을은 독송(獨松), 터골(基洞), 산당(山堂), 자방(紫房) 등 네 마을이다. 이 가운데 독송과 터골은 조선시대까지 개령현 서면의 덕림동(德林洞)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인근의 산당과 자방을 합해 덕촌동(德村洞)으로 고쳤다.덕촌1리 독송(獨松)은 신룡리 오룡골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1800년대 말 흥양이씨(興陽李氏) 이인목(李寅穆)이란 선비가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 뒷산의 산세가 독수리의 형상이고 정상에 큰 소나무가 홀로 서있어 마을이름을 물수리악()자와 솔송()자를 써서 악송(鄂松)이라 했다. 또 홀로독()자와 솔송()자를 따서 독송(獨松)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해 독슬로도 불렸다.독송마을과는 어모천을 사이로 두고 있는 덕촌3리 터골은 취적봉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임진왜란을 전후로 함안조씨(咸安趙氏)일가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정착하면서 터골이라 이름하고 한자로 터기()자와 터대()자를 써서 기동(基洞), 대동(垈洞)이라 했다.자방마을은 1480년 함양오씨(咸陽吳氏) 오식(吳植)이라는 선비가 경남 함양에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이래 대대로 함양오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왔다. 예부터 마을에 실을 짜고 염색을 들이는 일을 하는 공방이 있었다 해서 자주빛자()자에 방방()자를 써서 자방(紫房)이라 했다고 한다.자방마을로부터 산당고개 너머에는 산당(山堂)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1420년 밀양박씨 박응(朴應)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산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해서 마을이름을 산당(山堂)이라 했다고도 하고 마을에 산신당(山神堂)이 있었음으로 산당이라 했다고도 한다.자방마을 입구에는 성산이씨효열각이 있는데 성산이씨부인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감천 도평리 출신 의병장 이언의(李彦儀 1600~1639)의 따님으로 자방마을 오여권(吳汝權)에게 출가해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이 병사하자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쫓아 자결을 택한 효부이자 열녀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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